“장호기 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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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필수인력 우선접종 대상자에
포함됐던 경찰관 / 52세,

장호기 님 이야기

“엄마, 저 사람은 살았겠지?”

“우리도 그때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다면 
아빠가 살았을까?”

장세호 군(15)은 지나가는 구급차를 볼 때면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아빠는 경찰관이었다.

세호는 그런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나라에서 경찰관, 소방관 같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해 준다고 하니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아빠는 사회필수인력 우선접종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1차 접종했다.

2021년 7월 17일.
아빠는 화이자 백신을 교차 접종했다.

아빠는 접종 바로 다음 날에도 쉬지 않고 출근해 밤새 
당직 근무를 섰다.

다음 날 아침, 피곤한 얼굴로 돌아온 아빠는 식사를 하셨고 늘 그렇듯 TV를 보다 소파에서 곯아떨어졌다.

“으윽..!!”

그날 저녁, 세호는 방문 밖에서 아빠가 내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거실에서 나는 소리인가?’

‘무슨 소리지?’

‘아빠 잠꼬대인가?’

세호는 슬쩍 방 밖을 내다보고는 다시 돌아앉았다.

그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난해 7월 20일 새벽 아빠는 취침 중 사망했다.
백신 2차 접종 3일 뒤였다.

갑자기 부풀어 올라 멈췄다는 아빠의 심장.
세호의 머릿속에는 그날의 기억이 영상처럼 각인돼 있다.

‘그때 빨리 구급차를 불렀으면 아빠가 살았을까?’

그날부터 세호는 아빠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까지 받게 됐다.

아빠의 죽음과 백신의 인과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아빠의 죽음은 ‘경찰관’의 죽음으로도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백신을 맞고 사망한 공무원들이 많지
않아 순직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라는 아빠의 죽음을 알고 있을까?

가족들에겐 슬픔을 추스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책임졌던 가족의 생계는 온전히 엄마 민경 씨의 
몫이 됐다.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당장 뭐든 해야 했다.

민경 씨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에 몰두했다.

남편이 은퇴하면 시댁 근처에 작은 주택을 짓고
여유롭게 살자던 작은 꿈도 산산이 부서졌다.

“엄마 우리 이민 가면 안 돼?
이 나라에서 살기 싫어.”

언젠가부터 세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세호도 이민을 갈 사정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나마 속상함을 내비쳐야 속이 풀리는 것 같다.

민경 씨도 가끔씩 이 나라를 떠나 사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곧 다음 달 생활비 걱정을 떠올리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게,
남편이 국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게,
모든 게 자랑스럽고 뿌듯하던 때가 있었다.

그 날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은 사라졌다.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가 빨리 흘러가 무뎌지길
바랄 뿐이다.

두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될 때 까지만 버텨보자.
그 이후에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